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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pss.kr/archives/65429


ㅍㅍㅅㅅ는 예전부터 자주 보는 인터넷 매체다. 사회에 대한 다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하고 유익한 블로거들의 포스팅도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페미니즘에 관한 포스팅이 많이 올라오면서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거로 포스팅 되는 글이 많이 게시되곤 한다.


페미니즘이 나쁜 것도 아니고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많은 제약과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혐오, 미소지니에 대한 목소리는 커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혐오라고 단정하는 것을 남발할 경우에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해 '페미니즘'을 '프로 불편러' 양성학문으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결국 페미니스트의 소리를 대중이 공감해야 사회가 변혁된다고 믿기 때문에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것은 다수의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논거가 튼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ㅍㅍㅅㅅ - 왜 “미중년”은 남성에게만 쓰이는가: 남자만 늙어도 괜찮다고 허락받은 사회



그런 면에서 오늘 게시된 ㅍㅍㅅㅅ의 칼럼은 논거가 부족하고 위험한 게시글이라고 생각한다.


서두는 그렇다. 작년 케리 피셔의 몸매를 들먹이며 곱게 늙지 못했다는 비난에 트위터로 대응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글의 리트윗에 감명을 받아 썼던 글 같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멋지게 늙는 게 아니다. 남자는 그냥 늙어도 괜찮다고 [사회적으로] 허락받았을 뿐이다.


이 트윗에 공감하며 게시자는 미중년이라는 단어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성은 늙어도 '미중년'이라는 말로 그 나이대의 멋이 허락되지만, 여성에게는 그런 말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젊은 여성의 매력이나 미모에 대한 표현은 차고 넘친다.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꿀벅지, 베이글 같이 몸매와 관련된 단어들이 떠오른다. 적어도 미중년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사회적으로 남자가 나이 드는 건 그 나잇대의 멋으로서 용인된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이든 여자는 용인은 커녕 애당초 그 나잇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조차 제대로 된 게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바꿔 말해서, 사회적으로 여성의 미란 젊음과 사실상의 동의어다. 실제 아름다운 중년 여배우들을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단어들을 보면, 중년의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보다는 대체로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동안’, ‘꿀피부’, ‘주름 하나 없는’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그 논거로 여성의 미를 표현하는 미시에 대한 정의를 들었다.


미시: 네이버 용어 해설에 따르면, 미시의 정의는 이렇다 —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한 여성으로서 미스의 신선한 감각을 잃지 않은 타입의 사람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름다움의 가치가 젊음에 있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그 외에 위키피디아, 나무위키를 통해 골드미스, 중년미부의 설명을 하기도 했지만 여성의 미를 젊음으로 표현했다고 하기는 곤란한 설명이었다.


중년 여성의 미를 표현하는 미시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대한 표현이기에 늙음에대한 가치를 표현할 수 없다며 미중년과 다르다는 뉘앙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게시자의 주장과 달리, 미중년이라는 표현을 살펴보면 그 또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젊음에서 찾고있다.


미중년 : 네이버 오픈사전 - 미중년 이라는 말은 '미소년'을 표방한 신조어로, 불황 속에서 퇴직 연령이 낮아지고 젊은 구직자들이 늘면서 나이가 들어 보이면 사회적으로 불리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자신을 꾸미는 멋진 중년 남성들을 말한다.


물론 오픈사전이라는게 사용자가 직접 작성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무위키와 네이버 용어해설도 공신력있는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같다. 그래도 사용자의 공감을 얻은 문항만이 메인으로 노출되기때문에 오픈사전의 의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로, 중년의 원숙함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남성 뿐만아니라 여성에게도 동일하다. 방송인중에서도 성별에 상관없이 원숙한 매력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이기 때문에 원숙함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늙어감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사회 전 부분에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중년여성이 많다.


또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화가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주장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말이다. 관리하지 못하거나 늙어감에도 쌓여진 원숙한 가치가 없다면 그들 또한 곱게 늙지 못했다고 욕먹기 마련이다.


나는 '미중년이라는 말과 비슷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는 말 자체가 미소지니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중년'은 성별중립적인 어휘다. 미중년을 남성의 전유로 받아들이며 동일하게 쓰이는 여성 단어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남성을 주류로 보고 여성을 타자화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해당 글의 결론처럼 '미중년'을 양성 모두가 사용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결론에서 그렇게 말할거면 왜 미중년과 비슷한 여성지칭어를 찾아보려했을까 의문이 든다. 없는게 당연한 사회의 모습일텐데.)


원숙함이란 미적 가치는 남성에게도 존재하고 여성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에 미중년을 남성 전유로 사용하는 것보다 양성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결코 미중년이란 말은 늙어도 괜찮다고 남성에게만 허락해주는 어휘가 아니다.


오히려 미중년이 남자만 늙어도 된다는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것 보다 '미시'라는 말로 결혼한 여성을 구분하는 표현은 있지만 결혼한 남성을 지칭하는 비슷한 표현이 없다는 것에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됐다.






마치며



한국 사회에 여성인권은 여전히 신장되어야할 여지가 많다. 그렇기때문에 다양한 소리가 흘러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며 늘 새로운 것을 말하려 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을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것, 내지는 공감하기 곤란한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력이란 힘을 모아야 발생하는 것이다. 힘을 모으지 않고 분산되어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기보다는 세상의 소리에 묻혀서 사라지고말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다가 공감을 얻지 못하여 흩어지는 것보다 큰 목소리로 하나되어 대중의 공감을 얻고 세상을 바꾸는 변혁의 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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